딸 하주는 고양이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하주의 이불에 가끔 소변 실수를 합니다. 내가 볼 때는 실수라기보다는 고의성이라고 여겨지는데 하주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오줌을 싼 이불에서 냄새가 지독하게 나기 때문에 새 이불로 바꿔주고 이불 빨래를 해야 하는 데 그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주는 이불에서 지린내가 안 난다고 합니다. 그냥 그 이불을 덮고 잘도 잡니다. 이불을 세탁해주지 않으면 냄새나는 이불을 덮고 그냥 계속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성도들과 밥 먹으면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한 성도가 그러더군요. ‘하주가 고양이를 끔찍하게 사랑하나 보네요.’ 정말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더러운 것도 더럽게 안 느껴집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눈꼽도, 세수 안 한 얼굴도, 머리 냄새 조차도 나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엄마들이 자기 아기 똥이 더럽다고 똥 기저귀 안갑니까? 똥 잘 쌌다고 하면서 기뻐하면서 갈아줍니다. 어떤 아빠들은 아기 똥 냄새도 맡아보고, 맛도 보기도 한다고 합니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연약함이나 실수나 잘못이 그렇게 밉게 느껴지지 않고 용납이 되고 용서가 되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사울은 자기의 손으로 다윗을 직접 죽이지 않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려고 마음먹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내가 데리고 있는 나의 맏딸 메랍을 너의 아내로 줄 터이니, 너는 먼저 앞장서서 싸움을 싸워서, 네가 정말 용사인 것을 나에게 보여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제가 누구이며, 제 혈통이나 제 아버지 집안이 이스라엘에서 무엇이기에, 제가 감히 왕의 사위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사양했습니다. 사울은 딸 메랍을 다윗에게 주기로 하고서도 정작 때가 되자, 그의 딸을 다른 사람과 결혼시킵니다. 그런데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합니다. 누군가가 이것을 사울에게 말하니, 사울은 잘 된 일이라고 여깁니다. 딸 미갈을 다윗에게 주어서 그 딸이 다윗에게 올무가 되게 하여,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해야 하겠다고 혼자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에게, 다시 그를 사위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사울이 신하들에게 지시합니다. "너희는 다윗에게 내가 다윗을 좋아한다고 말하여라. 그리고 너희들도 모두 다윗을 좋아한다고 말하여라. 이처럼 우리 모두가 다윗을 좋아하니, 임금의 사위가 되라고 슬쩍 말하여라." 사울의 신하들이 부탁받은 대로 그런 말을 다윗의 귀에 들어가게 합니다. 다윗은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인데, 어떻게 내가 임금님의 사위가 될 수 있겠소?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로 보입니까?" 라고 말합니다. 사울의 신하들이 그 말을 사울에게 전하자, 사울은 "너희는 다윗에게 내가 결혼 선물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다만 블레셋 사람의 양피 백 개를 가져와서 나의 원수를 갚아 주는 것만을 바라더라고 하여라" 하고 시킵니다. 사울은 이렇게 하여,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할 셈이었습니다.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을 그대로 다윗에게 전합니다. 다윗은 왕의 사위가 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부하들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죽이고 그들의 양피를 가져다가, 요구한 수대로 왕에게 바쳤습니다. 사울은 자기의 딸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게 됩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았고, 자기 딸 미갈마저도 다윗을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다윗을 더욱더 두려워하며 다윗을 평생 대적하게 됩니다. 그 당시 블레셋 군대가 침입해 와서 싸움을 걸곤 하였는데, 그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장군들보다 더 큰 전과를 올렸기에 아주 큰 명성을 얻게 됩니다.
사울과는 다르게 다윗은 사울의 사위가 되는 것을 좋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 사울의 사위가 되는 것을 좋게 여길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고양이가 지린 이불을 덮고 태연하게 고양이와 함께 잘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윗은 위험을 무릅쓰고 블레셋 진지로 건너가서 이 백 명의 군사를 죽이고 양피를 베어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블레셋의 위협에도 용기를 가지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하려고 짠 작전에 오히려 다윗은 용기와 사랑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다윗을 용납하는 사랑도, 백성을 품는 사랑도 없었습니다. 사울에게 사랑이 없으니 다윗이 죽이도록 밉게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두렵게 여겨졌습니다. 급기야 사울은 다윗을 위험에 몰아넣는 계략을 벌이지만, 다윗이 이 백 명을 죽이고 양피를 베어오자 하나님과 함께 하는 다윗을 더욱 더욱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사울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다윗이 두려웠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오점도 실수도 연약함도 넉넉히 품게 됩니다. 사랑이 있으면 두렵지 않습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