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무능력

by 이도수 posted Apr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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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이 금지한 열매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의 삯인 사망도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망’은 단지 육체의 죽음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신뢰를 누리며 살아가던 아담은 죄로 인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더 이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할 수 없는 부패하고 무력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왜 아담의 범죄가 우리에게까지 적용되는 것일까요? 국민의 대표가 대통령이라면, 모든 인류의 대표는 누구일까요? 아담이 모든 인류의 대표입니다. 대통령의 선택과 행동이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고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아담의 행동은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것을 ‘대표성의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롬5:12~14) ‘왜, 한 사람 때문에 죄가 세상에 들어와야 하는가? 아담 한 사람만 심판 당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아담을 대표로 선택하지 않았어,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었는데 아담이 대표라는 것은 불공정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대표를 뽑았다면 최선의 대표를 뽑았을까요? 만약 당신이 아담의 위치였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선택보다 내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교만한 주장입니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고, 아담 안에서 모두 유죄입니다. 오히려 대표성의 원리가 우리에게는 좋은 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아담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대표하시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상태로 세상에 태어나는 우리는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며 일평생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성경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3:10~18) 우리 본성이 죄로 더럽혀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며 마음이 강퍅해져서 하나님을 모릅니다. 죄로 가득한 자기중심성 때문에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누구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안에서, 심지어 종교나 도덕적인 부분에서조차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고 숨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기에 사망의 지배와 영향을 받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이고 피할 수 없는 결과입니다.


나는 운전하다가 누군가가 내 차에 접촉사고를 내거나 끼어들거나 신호를 지키지 않으면 화가 나고 속으로 욕까지 올라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나도 다른 사람에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피해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아! 나도 거짓된 인간이구나!!’라는 마음이 들면서 슬퍼집니다. 아프리카 아이들의 맑은 눈을 보면 그 순수한 눈에 빠질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훔쳐가거나, 독기어린 눈으로 바뀌는 아이들의 눈을 보면서 아이들에게도 똑 같은 죄성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우리 스스로 죄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입니다. 이 말은 모든 인간이 악당, 간통자, 살인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품적으로 착하고, 모범적이고, 순종 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가 우리나라에서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까지 수영해서 갈 수 있을까요? 수영 선수라고 할지라도 물에 빠져 죽고 말 것입니다. 누가 다른 이들보다 더 잘 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도덕성이 있다고 하지만 누구도 의로움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모두 똑같이 길을 잃었고 정죄를 받아 멸망할 운명입니다. 태평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죽음의 바다를 누구도 건널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담 안’에 속해 있던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주셨고, ‘사망’이 왕 노릇하는 삶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삶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감사할 뿐입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