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이사하려고 집을 알아보고 있던 중에 괜찮은 집이 나왔다고 해서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가보았습니다. 인테리어를 깔끔하게 다 해놓은 상태였고 전망도 좋은 남향의 로얄층 이었습니다. 집값도 다른 곳에 비해서 괜찮아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장막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계약하기로 날짜까지 잡았습니다. 부푼 마음으로 기다리며 이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5천만 원 다운 계약서를 써주면 좋겠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럼 서로 이익을 보게 되니까 그렇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다들 그렇게 하니 서로 합의해서 하면 별 이상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뭔가 찜찜해서 한 번 생각해보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어떤 분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잘 판단이 안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집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기도해보았지만 양심이 찔려서 더 기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고 전화를 드려서 없던 일로 한 적이 있습니다.
다윗은 아무 죄 없이 쫓기며 고통 받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마침내 자신을 죽이려 하던 사울을 단번에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았을 때, 다윗이 사울을 해치는 일은 당연하고도 정당한 일처럼 보였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그 상황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당신 손에 넘기셨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자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다윗에게 사울을 처단할 것을 권합니다. 수년 동안 쫓기며 억울함을 견뎌온 다윗에게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을 자른 후, 곧바로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윤리적 가책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느끼는 영적 민감함에서 나온 반응입니다. 그는 감정이나 억울함에 이끌려 행동하지 않았고, 양심과 믿음에 따라 반응하였습니다. 그는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임을 기억하고, 인간적인 판단으로 하나님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믿었지만, 그 이루어지는 방식 역시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상황과 욕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려는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예를 들어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주소를 옮기거나, 다운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편리함을 이유로 이용하는 일이 그렇습니다. 때로는 그런 행동이 나에게 유익을 주고, 억울함을 당하지 않는 길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일까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도,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며 기적을 행하라고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믿음의 삶은 상황을 해석하는 싸움이며, 그 중심에는 말씀에 입각한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자기 해석과 정당화에 빠지게 됩니다.
다윗은 굴에서 나와 사울에게 진심을 담아 자신의 결백을 말합니다. 그리고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겠다고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이 말은 억울한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를 변호하거나 보복하기보다 하나님의 공의에 맡기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 고백은 사울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사울은 울며 자책했고 다윗의 장래를 축복하기까지 했습니다.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다윗의 인내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의를 드러내는 길이 되었고, 하나님의 손길은 사람의 손보다 넓고 깊은 열매를 맺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빠른 판단과 즉각적인 결과를 요구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억울함은 곧장 해결되어야 하고, 손해는 즉시 보상받아야 하며, 기회는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행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수많은 '기회'들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기회가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지, 아니면 나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지 분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다윗처럼 마음이 찔릴 줄 아는 영적 민감함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억울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을 기다릴 수 있는 믿음, 내 손이 아닌 하나님의 판단을 따르는 순종이야말로 오늘날 성도에게 더욱 필요한 덕목입니다.
결국 신앙은 단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 길은 때로 억울하고, 더디고,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안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다윗의 선택은 단지 사울을 살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질서와 공의를 지켰고, 인간의 방식보다 하나님의 방식이 더 깊고 지혜롭다는 사실을 증명해냈습니다. 우리 역시 그러한 신앙의 길 위에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합니다.